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분립에 있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구조 없이는 어떠한 자유도, 어떠한 정의도 지속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하는 최후의 보루다. 국회가 다수 의석의 힘을 앞세워 사법부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거나, 이를 제압하려는 시도는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최근 국회 다수당이 특정 판결에 불만을 품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을 향해 비판을 넘은 사실상 겁박성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을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헌법재판관의 탄핵을 거론하고,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원 조직 개편, 인사권 조정 등을 언급한다. 이는 정치적 불만을 사법부에 전가하고, 독립된 재판권을 침해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판결이 완벽할 수는 없다. 오판 가능성도 있고, 일부 국민 정서와 어긋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 판례와 증거에 근거하여 심리하고 판단하는 고도의 법적 절차다. 국회가 이를 마치 정치적 결정처럼 몰아가고, 결과에 따라 사법부를 해체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태도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시도가 대중적 선동과 결합될 때 나타나는 법치의 붕괴 현상이다. 다수당은 국민의 지지를 업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헌법 위에 군림할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헌법은 다수결을 통해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가치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법의 독립이다.
특히 입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의도는 권력 집중의 전조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손에는 입법권, 다른 손에는 예산권과 국정감사권을 쥔 국회가 사법부의 독립성까지 무너뜨린다면, 민주주의는 명목상 존재하되 실질적 권력은 특정 정치세력에 집중될 것이다. 이는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천명한다. 이는 단지 법관 개인의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의 자율성을 말한다. 여기에 국회의 간섭이 지속되거나 압박이 더해진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는 흔들리고, 권리 구제의 최종 수단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판결에 불만이 있다면 합법적이고 헌법적인 절차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판결의 법적 타당성을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입법을 통해 개선점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 권위를 앞세워 사법부를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일이다.
국회 다수당은 사법부와의 긴장 관계를 정치적 자산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견제받는 권력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은 다수를 가졌다고 해도, 언젠가는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사법부에 대한 위협은 내일의 국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법 위에 권력은 없다”는 신념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