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만남이 어렵게 성사됐지만,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의 돌파구가 마련되기커녕 오히려 악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대화가 종료된 후 양측이 밝힌 입장에 뚜렷한 온도차가 드러나면서 상황은 한층 더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4일 대통령실과 의료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후 2시부터 140분간 면담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전공의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 등을 설명했고, 윤 대통령은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할 때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반면 박 위원장의 입장은 대통령실의 설명과는 온도 차가 뚜렷하다. 박 위원장은 이날 저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별다른 설명 없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대화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조심스레 기대감을 표하던 의료계에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이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밝혔을 때까지만 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기도 했으나, 박 위원장이 SNS에 '파행'을 시사하는 듯한 글을 올리면서 분위기가 반전했다.
윤 대통령과 대전협이 사실상 '접점'을 찾지 못한 듯한 모양새로 면담이 종료된 데 따라 앞으로 의정(醫政) 갈등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다. 이번 만남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전성모병원을 사직한 인턴 류옥하다 씨는 이날 박 위원장의 페이스북에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에 명분만 준 것 같아 유감"이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는 이번 만남에 대해 "전공의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비대위의 독단적 밀실 결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선배 의사' 격인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도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 당선인은 이날 오후 8시 47분께 SNS에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 먹질 못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적었다.
게시물 댓글에서는 임 당선인이 윤 대통령을 지목한 게 아니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뤘으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박 위원장과 윤 대통령과의 만남은 의협과 협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남은 의료계에서는 박 위원장 홀로 참석했으며, 임 당선인 등 의협은 배석하지 않았다.
애초 윤 대통령과 전공의의 만남이 성사됐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했던 의료계에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박 위원장마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원점 재논의'에 대한 정부와 전공의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뻔한 결말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에서는 의대 증원 2천명을 백지화한 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의대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