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임기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보여주는 태도는 충격적이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곧 대통령 궐위 시 치러지는 선거는 보궐 선거이고, 당선자는 잔여 임기만 수행한다는 헌정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를 정기 대선처럼 포장하며 ‘5년 임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정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정치권의 집단적 헌법 무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시점부터 5년 단임이라는 것이 헌법 제70조의 원칙이다. 그러나 그 단임 원칙은 정상적인 선거 절차에 의해 선출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통령이 탄핵이나 사망 등으로 궐위된 경우엔 예외적으로 보궐선거를 통해 잔여 임기만 수행하는 임시 권한자가 선출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권력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이 명확한 헌정 원칙은 이미 한 차례 정치적 해석에 의해 무너진 바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가 그 사례다.
이는 명백한 보궐선거였고,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남은 임기만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선거를 정기 대선으로 간주했고, 문 대통령의 임기를 새롭게 5년으로 설정했다. 정치권과 언론, 학계는 이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국민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지금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헌법적 원칙을 행정적 편의로 덮어버린 전형적인 위헌적 선례였다.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헌법 제68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도 이를 합리화한 것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법치의 근간을 허문 사건이다. 그 부작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이번 선거룰 앞두고 대 국민 메시지를 냈다. 대부분 공정하고 깨끗하게 선거를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선거 역시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를 불식 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개선 하거나 이번 대선은 보궐 대선이라는 국민적 우려를 제기하는데도 핵심은 비켜 나갔다. 이는 부정선거 의혹이 있건 말건 헌법 위반을 하건 말건 선거의 공정관리가 중차대한 직무 책임자인 선거관리위원장이 헌법위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도 상관 없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는 것인가?
혹시라도 그렇다면 스스로 양심 고백을 하고 직을 내려 놓는 것이 공정이 아닐까 라는 국민 여론이 중론이다. 그리고 이를 수사하지 못하는 경찰이나 검찰도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또, 정치권은 부정 선거에 대한 의혹 상황이 이렇게 엉켜 있는데도 이를 먼저 개선 할 생각은 없고 두리뭉실 2017년의 잘못된 관행을 전례 삼아, 다시 한 번 ‘새 임기’ 논리를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7공화국’ 운운하며 새 판을 짜겠다고 나서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공화국의 교체는 헌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국민의 동의 없이, 헌법 위에서 권력 재편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적 발상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당한 절차, 헌법의 존중, 권한의 제한이라는 원칙 위에서만 정권 교체는 의미가 있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새 시대를 말하기 전에,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당선자가 누구든, 이번 선거는 대통령 궐위로 인한 보궐선거이며, 그 임기는 잔여 기간에 한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또다시 새로운 5년 임기를 강행한다면, 우리는 두 번 헌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고, 헌정사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국민은 정권보다 헌법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치권이 이를 모르거나 외면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정치권 전체가 져야 할 것이다.